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 (문단 편집) == 역사 ==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곳이나 패전에 따라 오헝제국은 해체되었다. 오헝제국의 영토에는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새로운 민족국가들이 들어섰는데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가 위치한 지역은 [[이탈리아인]]과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이 뒤섞여 살던 지역이라 영유권을 두고 [[이탈리아 왕국]]과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갈등을 벌였다. 최종적으로 1924년에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에 해당하는 지역은 모두 이탈리아 왕국에 귀속되었다. 이 지역의 슬로베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은 이탈리아 왕국의 이탈리아 동화 정책 대상으로써 민족성을 억압당했고, 이탈리아가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하고 나서는 대놓고 탄압당했다.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는 패전국이 되었고, 1945년에 트리에스테 인근에는 [[영국군]]과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동시에 주둔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트리에스테를 점령했지만, 이 곳을 차지했던 [[나치 독일군]][* 당시 트리에스테는 [[나치 독일]]의 [[괴뢰국]]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통치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치 독일군이 주둔했다.]이 영국군에 항복한 데서 비롯되었다. 트리에스테 인근 남슬라브계 주민은 유고슬라비아에 귀속되고자 했고 이탈리아계 주민은 이에 위협을 느꼈다. 이탈리아계 주민과 남슬라브계 주민의 갈등이 폭력사태로 번지게 되자, 영국군과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잠정적 협정을 맺어 서로의 점령 지구를 분할하게 되었다. 1947년에 이탈리아는 [[연합국]]과 강화조약(파리조약)을 맺어 일부 영토를 프랑스와 유고슬라비아에 할양했는데, 이 조약에서 트리에스테 인근 지역만큼은 이탈리아계 주민과 남슬라브계 주민의 갈등으로 영유권을 확정짓지 못하고 미루기로 하였다. 그 대신 트리에스테 인근 지역은 트리에스테 자유 지역으로 지정하고 [[UN]] 결의를 통해 별도의 통치기구를 두기로 하였다. 이 때 트리에스테 시를 포함한 북부 지역을 A지구(면적 222.5㎢, 인구 26만 2406명), [[이스트라 반도]] 북서부 지역을 포함한 남부 지역을 B지구(면적 515.5㎢, 인구 7만 1000명)로 하였는데 A지구는 영국군 점령 지역, B지구는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점령 지역에 해당하였다.[* A지구의 경우 후에는 [[미군]]도 주둔했다.]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의 통치기구는 미국과 영국에서 임명한 군정장관이 A지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지명한 군정장관이 B지구를 통치하는 형태였다. 일단 국제사회에서는 주권을 갖는 독립국처럼 인식되어, [[마셜 플랜]] 지원대상국 중 하나였으며 [[OECD]] 창립국에 들어갔다. 트리에스테 자유지구의 존속 기간 동안 A지구 내의 남슬라브인은 이탈리아계의 압박을 피해 B지구로 이주하였고, 반대로 B지구 내 이탈리아계는 남슬라브계의 압박을 피해 A지구로 이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